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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현대사진의 원류 – 입자에 새긴 이야기 – 울산사진학원

울산사진학원
ⓒ Shomei Tomatsu, The Pencil of the Sun, Hateruma Island, Pigment Print, 75×105.7cm, 1971

참여 작가: 토마츠 쇼메이, 츠치다 히로미, 키타이 카즈오, 이시우치 미야코, 아라키 노부요시
전시 일정: 2018년 6월 9일 – 8월 29일

1950년대 중반부터 1970년대 전반까지 일본은 ‘고도경제성장’이라 불리는 급격한 경제발전을 이루었다. 특히 1964년의 도쿄 올림픽과 1970년의 오사카 만국박람회 등의 특수를 누리면서 1968년에는 국민총생산(GNP)이 세계 2위로 올랐다. 1973년 오일쇼크를 겪기도 했으나, 이후 70년대는 전반적으로 안정적인 성장을 지속했다. 정치적으로는 1960년과 1970년의 미일안전보장조약 비준 반대운동(안보투쟁)이 전국적으로 활발하게 일어나는 등 이 시기는 ‘정치의 계절’이라 일컬어졌다. 1972년에는 약 사반세기 동안 미국 점령 아래 있었던 오키나와가 일본으로 반환되었다. 이 시기에 사진계에서는 현대로 이어지는 새로운 경향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젊은이들이 태평양전쟁 이전과 전쟁 중 나타난 보도사진의 방향성에 의문을 품은 것이다. 미디어로서의 사진을 되찾고 자신들의 사상을 어떻게 사진화할지 고민하기 시작한다. 그 선두에는 토마츠 쇼메이(東松照明)가 있었다. 토마츠는 사진동인지 『PROVOKE』로 모인 나카히라 타쿠마(中平卓馬), 모리야마 다이도(森山大道)의 활동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들은 ‘아레, 부레, 보케’ (거칠고, 흐릿하고, 초점이 안맞는)라는 말이 상징하듯이, 기존 사진과 시각적 제도를 부정하고 해체했다. 기성 제도와 체제를 향한 반발이 정치뿐만 아니라 사진계에도 영향을 끼친 것이다.
‘안보투쟁’은 대학분쟁, 나리타공항 건설을 둘러싼 산리즈카 투쟁 등으로 번져갔다. 그리고 이러한 투쟁을 바리케이드 안쪽에서 찍은 사진가들이 있었다. 키타이 카즈오(北井一夫) 또한 그 중 한 명이다. 언론을 장식하는 사진은 대부분 경찰과 기동대 너머로 보이는 바리케이드의 모습이었으나, 키타이 카즈오는 그 반대편인 바리케이드 안쪽에서 학생과 농민의 시선으로 그들의 일상을 촬영했다. 한편, 일본 사회는 급격한 경제발전과 더불어 다양한 변화와 왜곡이 일어나고 있었다. 공해 문제도 그 중 하나였으며 이를 사진을 통해 고발하는 사진가들도 있었는데, 구와바라 시세이(桑原史成)는 ‘미나마타병(수은중독)’을 추적했다. 문화와 풍습이 변해가는 시대 속에서도 변치않는 토속적인 것, 일본적인 것을 추구한 츠치다 히로미(土田ヒロミ)가 있었다.
1966년 미국 조지 이스트만 하우스는 《컨템포러리 사진가들, 사회적 풍경을 향하여》전을 개최하였다. 당시 전시된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담담하고 평범한 일상에 시선을 보내는 ‘콘포라’ 사진가들이 등장했다. 나아가 개인적 시점과 사건을 소재로 한 사(私)사진을 내세우는 사진가들도 나타났다. 아라키 노부요시(荒木経惟)와 후카세 마사히사(深瀬昌久)는 가족을 모델로 삼아 촬영했고, 이시우치 미야코(石内都)는 개인의 기억과 체험, 여성으로서의 감정을 테마로 작업했다.
60~70년대는 일본이 크게 변화한 시대이다. 그 속에서 젊은이들은 기성 제도와 체제에 저항하는 동시에 새로운 시선을 사진으로 담았고, 사진의 방향성 또한 크게 변화하였다. 이번 전시에서는 토마츠 쇼메이, 키타이 카즈오, 츠치다 히로미, 아라키 노부요시와 이시우치 미야코에 이르는 5인의 작품을 통해 일본현대사진의 원류 중 한 단면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 시기 사진계의 주요 사건에는 대부분 토마츠 쇼메이가 관련되어 있다. 그는 일본 현대사진을 선도하는 역할을 했다. 그의 사진은 전쟁의 상처, 점령, 미국화, 그리고 일본과 일본인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가득하다. 토마츠는 1969년 처음 오키나와에 방문한 이후 몇 번이고 그곳을 다시 찾았다. 그는 그곳에 매료된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오키나와에 온 것이 아니라 일본으로 돌아온 것이며, 도쿄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미국으로 가는 것이다.” “오키나와는, ……섬 전체가 점령되었다. 게다가 4분의 1세기에 걸쳐 미국의 군정 아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키나와는 순수하고 더럽혀지지 않았다.”1 그의 사진집 『태양의 연필』은 오키나와를 점령의 상징이 아닌, ‘일본’ 사람들의 생활과 문화, 전통으로 자연스럽게 표현하고 있다.

‘정치의 계절’이 절정을 맞이하는 1960년대 후반, 키타이 카즈오는 자신도 다닌 바 있는 일본대학 예술학부에서 벌어진 학생 농성의 나날을 기록했고 화보 잡지 『아사히 그래프』를 통해 발표했다. 하지만 서서히 편향되어가는 활동에 의문을 느낀 그는 농촌 사람들의 생활에 눈을 돌려 지바현 나리타시 교외의 농촌 산리즈카를 촬영하기 시작했다. 그곳은 공항 건설 예정지라고는 하나 목가적 풍경이 남아있는 곳이었다. 측량을 위해 찾아오는 공무원에게 농민들이 드럼통을 두드리며 목소리를 높이는 정도의 한가로운 풍경이었다. 하지만 이곳에도 다양한 사상을 지닌 사람들이 유입되면서 운동은 격렬해졌고, 결국 정부의 힘으로 강제 퇴거당한다. 키타이 카즈오는 그 모습을 농민의 시선으로 본 『산리즈카』로 엮었다.

츠치다 히로미의 이름을 널리 알린, 중년의 농민 남녀가 나무 그늘에 앉아 술을 마시고 있는 사진이 있다. 산촌의 유명한 마을축제에 갔을 때 몰려 든 사진가들에게 질린 그가 신사에서 멀리 떨어진 장소에서 촬영한 것이다. “사실 이런 사진은 찍고 싶지 않았습니다. ……저는 여기서 벗어나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야마기시 씨에게 사진을 보여줬더니 재밌다는 거예요.”2 호쿠리쿠 지방의 산촌에서 태어나 도시생활에 대한 동경을 품고 상경한 츠치다는, 떠나고 싶었던 그 곳의 풍경을 포착함으로써 (수많은 젊은 사진가를 발굴한) 『카메라 마이니치』의 편집장 야마기시 쇼지(山岸章二)에게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츠치다는 “일본의 옛 종교 공간과 축제 공간 등을 둘러보고자” 전국을 누볐고, 고도경제성장과 도시화의 물결에 따라 변해가는 일본인의 생활과 풍속을 기록하여 『속신』으로 엮었다.

아라키 노부요시는 도쿄 토박이로 대학을 졸업한 후 대형 광고대행사의 카메라맨이 되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요코를 만나 결혼한다. 두 사람의 신혼여행 모습은 『센티멘털한 여행』이라는 제목으로 1,000부 한정의 자비출판 사진집에 담겼다. 거리 스냅사진에서 부부의 행위까지, 연출된 여행 장면을 보여준다. 책의 서두에서 “이 『센티멘털한 여행』은 나의 사랑이자 사진가의 결심입니다. ……저는 어쨌든 사(私)소설을 계속할 것 같습니다. 사소설이야말로 가장 사진에 가깝다고 생각하니까요.”라며, 당시 30세였던 젊은 아라키는 자신의 미래를 사소설(사(私)사진)에 걸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아내 요코와의 일상을 계속해서 촬영했다. 20년 후 요코는 병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겨울의 여행〉은 그 마지막 여정을 쫓은 작품이다.

이시우치 미야코는 초등학교 시절 부친의 일을 따라 기타간토의 지방도시에서 미 해군기지가 있는 요코스카로 이사했다. 당시 그녀에게 요코스카는 문화적 충격을 안겨 준, 좋은 추억이라 할 것이 없는 그저 도망치고 싶은 장소였다. 그 사춘기 시절에 4명의 가족이 3평짜리 아파트 단칸방에서 보냈던 것이다. 싸구려 모르타르로 지어진 아파트의 벽 한 장 너머 방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가지각색이고 자주 바뀌었다. 아파트의 좁은 방은 “인간 보따리”3 처럼 보였고 사람들의 “냄새, 보이지 않은 분실물 등이 엉겨 붙어있었다.”4 이런 것들을 ‘인간도 벽의 일부’로 다룬 것이 그의 첫 사진집 『APARTMENT』이다.

이번 전시는 토마츠 쇼메이를 제외한 모든 작가들이 20대 후반에서 30대 즈음에 제작한 작품 위주로 구성되었다. 이 작품들을 계기로 널리 알려지게 된 젊은이들은 이후 일본 사진계를 이끌어가는 작가로 성장했다. 일본현대사진의 원류라고 할 수 있는 작가들인 것이다. 사진이란, 흔히 말하듯 토속적인 것이며, 그 시대, 장소와 분리할 수 없다. 이 작품들은 그 시절의 사회와 작가 본인이 품었던 생각을 필사적으로 고민하고 저항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전시의 제목은 토마츠 쇼메이가 이시우치 미야코의 사진집 『APARTMENT』의 띠지에 적은 “입자는 언어다.”라는 구절에서 착안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감정과 생각을 사진이라는 새로운 언어로 만들어 발언하기 시작한 선구자이다. 고은사진미술관에서 언어적 표현 이상으로 풍부한 그 시절 일본의 모습을 발견하길 바란다.

스가누마 히로시 (큐레이터)

글과 사진에 대한 모든 저작권은 ‘고은사진미술관’에 있습니다.
http://www.goeunmuseu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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